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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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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기억이 맞다면 오사카에 막 왔을 때 친구에게 선물 받은 책이었다. 어째서 문득 읽고 싶어 졌는지 알 수 없지만, 요즘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서 책을 읽는 동안에는 생각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보다 술술 잘 읽혔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총 3 파트로 나눠져 있는데 내가 가장 공감을 많이 하거나, 기억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첫 번째 파트에 많이 몰려 있었다.

  내가 떠나오고 싶어했던 이유, 그리고 지금도 나를 괴롭히는 질문들, 앞으로 지니고 살아야 할 생각들을 담은 부분을 추려보았다.

한국사회는 이런 사회다. 실제 하는 일, 봉급도 중요하지만 '남들 보기에 번듯한지' '어떤 급인지'가 실체적인 중요성을 가진 사회인 거다. P.30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집착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는 이들을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냥 남을 안 부러워하면 안 되나. 남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안 되는 건가. 배가 몇 겹씩 접혀도 남들 신경 안 쓴 채 비키니 입고 제멋으로 즐기는 문화와 충분히 날씬한데도 아주 조금의 군살이라도 남들에게 지적당할까 봐 밥을 굶고 지방흡입을 하는 문화 사이에 어느 쪽이 더 개인의 행복에 유리할까. P.32~P.33

가성비 좋은 행복 전략이라는 관점으로 생각하면 직업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집착할 필요도 없다. 우선 자기 힘으로 생존하는 것이 생명체의 기본 사명이므로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자기가 선택가능한 지업 중 최선을 선택하여 생계를 유지하되, 직업은 직업일 뿐 자신의 전부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므로 취미 활동, 봉사, 사회 참여 등 다양한 행복 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것이다. P.54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똥개들이 짖어도 기차는 간다. P.57~P.58

팔리든 말든 내 나름대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하는 소소한 일상 자체가 내게 즐거움을 준다. 판사 수직선 중 몇 등인지, 작가 수직선 중 몇 등인지를 세며 한 칸 더 위로 올라가려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말이다. P.61

법관들도 말에 대해 주의하고 반성하기 위해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 데이의 「세 황금문」이다.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P.136

북유럽 전역에서 관습법처럼 토용되는 '얀테의 법'이라는 것도 있다. 1933년 산데모제라는 노르웨이 작가가 이를 정리하여 소설 속 가상의 덴마크 마을 얀테의 관습법으로 발표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의 핵심은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보다 더 낫다고 남보다 더 많이 안다고 남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을 비웃지 마라'다.P.260

 

  요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결국 내가 스스로를 존립하는 주체로 보기보다는 남들과 비교하여 지금의 나의 위치와 가치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내가 레즈비언이 아니었다면, 내가 한국인이 아니었다면, 내가 장녀가 아니었다면, 내 여자 친구가 트랜스젠더가 아니었다면, 내가 외노자가 아니었다면......'과 같은 가정을 생각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자기혐오와 같은 달콤한 것은 쉽게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현재의 어떤 한 축과 맞닿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좋다는 것도 안다.

  나는 한국인 레즈비언이며, 내 여자 친구는 트랜스젠더이고, 내가 외노자인 동시에 K-장녀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동시에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스스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만큼의 봉급을 받는 일을 하고 있고, 워라벨도 좋은 편 것도 사실이다.

  내 사랑을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필요는 없다. 내 사랑의 형태는 공고하고, 나는 안정적으로 연애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지만, 이것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하다. 사실 여기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누군가는 가족이다. 그러나 내가 선택하여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미안함보다는 안타까움으로 전달할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있다. 미안하거나 죄송한 게 아닌 줄 알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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